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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나라사랑

2017.06.0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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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랑

박윤식 원로목사의 선친 박영춘 옹은 황해도 사리원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북간도에서 독립운동을 수행하다가 해방 직전 행방불명 되었던 적이 있었다. 박윤식 원로목사 역시 일제 강점기부터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 시대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격변기를 살아가면서 전 생애 동안 애국애족 활동에 매진하였다. 

박윤식 원로목사는 1928년 황해도 사리원의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5대째 집안에서 암자를 모실 만큼 독실한 불교 집안이었다. 그러나 할머님이 비 오는 날 한 교회 성도가 우산을 빌려 준 것이 고마워 신세를 갚기 위해 김익두 목사의 부흥집회에 나간 것이 기독교 집안으로 바뀌는 출발이 됐다. 박윤식 원로목사는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지 약 1년 만에 집안에 신주로 모셔놓은 돈 궤를 때려 부순 뒤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했고,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에 성경을 벌써 6번 읽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던 부친에게는 몇 번 매를 맞으면서까지 전도했는데, 결국 부친도 “그래도 내 영혼을 생각하는 것은 너뿐이다.”라고 말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황해도 최고의 명문이었던 해주동중을 졸업하였다. 정원식(전 국무총리), 윤자중(전 교통부 장관, 공군참모총장), 조완규(전 서울대 총장) 등이 그의 해주동중 동기생이다. 1945년 해방 후 북한에 김일성 정권이 세워지면서 북한 전역에서 공산주의 교육이 실시되었다. 박윤식 원로목사도 ‘당과 수령을 위해서라면 부모도 죽일 수 있다’는 철저한 공산당 교육을 받았고, 1946년 해주동중 졸업 후에는 공산권 최고 대학이었던 소련 모스크바대학이나 김일성대학(1946년 설립)에 가려고 했지만, 노동자, 농민이 아닌 상인 집안이라는 출신 성분 때문에 진학할 수도, 공산당에 가입할 수도 없었다. 이어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자식에게 아버지의 머리를 톱으로 썰게하는 반인륜적인 참상을 직접 목도한 뒤 공산주의의 실상을 깨닫게 됐다. 월남(越南)을 꿈꾸던 1948년, 한 동창이 보안대에서 체포령이 내렸다며 도망가라고 귀띔해 주자, 그는 새벽 2시에 보안대 청사에 불을 지르고 그 길로 월남하여 전남 나주 영산포에 정착했다. 


빈손으로 내려온 남한에서의 삶 또한 녹록치 않았다. 국군의 전신 국방경비대에 입대했지만, 이북 출신이라는 이유로 많은 가혹행위를 당했고 늘 최전방 위험한 곳으로 배치되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 사건이 일어난 뒤 영해, 영덕, 포항, 안덕, 태백산,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장안산 등을 오가며 토벌작전에 참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개성으로 이동하다가 서울이 3일 만에 함락되자, 김석원 장군이 이끌던 3사단 22연대에 배치되어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했다. 당시 낙동강은 자유 대한민국의 마지막 방어선으로 가장 처절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포항에서는 민간인으로 위장한 북한 인민군 200여 명이 따발총으로 기습해 많은 전우들을 잃기도 했다. 총을 맞고 비명을 지르는 전우들,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학살한 시신들, 죽은 어머니의 시체에서 젖을 빠는 아이들까지, 다시는 벌어지지 말아야 할 참혹한 민족적 비극의 현장을 목격했다. 1951년 6월 18일, 박윤식 원로목사 자신도 전투 중 대퇴부에 기관총 총상을 입었다. 과다출혈로 체온이 떨어져 온 몸이 떨리고 송곳으로 쑤시는 고통으로 ‘차라리 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어린 시절 주일학교 선생님의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가르침이 떠올라 칡뿌리로 다리를 묶고 이를 악물며 버텼다. 3일 만에 미군 포병부대에 구출된 박윤식 원로목사는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대신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고, 부산 야전병원에 약 1년간 입원했다. 이 후 87년 평생을 한쪽 다리에 쇳덩이가 박힌 채로 목회 사역을 감당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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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국기도회


상이용사로 전역한 박윤식 원로목사는 전쟁에서 희생된 전우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상처 받은 백성을 보듬고 소망을 주기 위해 목회의 길에 나설것을 결심했다. 그는 성역(聖役)의 기간 내내 애국애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매주 목요일 구국예배를 드리며 ‘나라와 민족이 없으면 교회도 가정도 설 수 없다’고 가르쳤다. 1970년대 이후로는 성도들과 함께 복무 당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자 자신이 기도했던 장소인 장안산과 지리산을 찾아 “부름 받은 나 여기 있으니 조국이여 안심하라!”라는 구호를 내걸고 뜨거운 애국혼으로 여러 번의 구국기도회를 가졌다. 틈나는 대로 전방의 부대들을 방문해 국군 장병을 위로하며 격려금과 위문품을 전달했으며, 군인과 경찰직에 있는 성도들을 각별히 아끼면서 사명감을 고취하였다. 시간이 흘러 6·25전쟁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들이 많아지고 역사인식이 급격히 좌경화되자, 박윤식 원로목사는 1945년 해방부터 1950년 6·25전쟁까지의 격변기에 역사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생존자들을 일일이 만나 증언을 청취했고, 빨치산과의 전투가 있었던 격전지들을 찾아가 지형을 자세히 기록하면서 바른 역사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2007년부터 매년 ‘나라사랑 웅변대회’를 개최해, 전후 세대에게 바른 역사 인식과 나라사랑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이 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송명순 육군 준장(대한민국 최초의 전투병과 여성 장성)은 “이 자리는 감동을 넘어 충격 자체이며, 대한민국의 어떤 단체도 이런 역사를 만들어 내는 곳은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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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4월 18일, 9사단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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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와 감사패

마침내 2011년, 50년에 가까운 연구와 현장 답사의 결실로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가 출판됐다. 구한말 일제 강점기부터 6·25 전쟁까지의 역사를, 직접 목도한 현장과 철저한 답사 및 인터뷰 결과,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총 4권으로 집대성한 이 책은 역사적 진실을 정밀하게 담은 불멸의 사료로서 바른 역사관과 애국애족의 민족혼을 뜨겁게 전해 주고 있다. 박윤식 원로목사는 자비로 약 100만 권을 군부대와 일선 학교들에 보급했고, 국방부에서는 장병 필독서로 지정했다. 이 책을 통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실에 철저하게 입각하면서도 사상적으로 균형 잡힌 역사관을 갖게 됐다. 해병대에서는 책을 읽은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책의 내용을 만화로 그려 내부 사이트에서 공유하기까지 했으며 이 책을 주제로 한 수많은 강연과 발표회가 군과 여러 사회단체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김관진 국방장관(당시)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술이 매우 사실적이어서 전 국민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며 박윤식 원로목사에게 직접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개신교인들을 극심하게 핍박하며 학살했던 스코틀랜드의 ‘피의 여왕’ 메리 여왕은 장로교의 창시자 존 낙스를 두려워하여 ‘나는 백만 명의 군대보다 존 낙스의 기도가 더 두렵다’라고 말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한사람은 핵무기보다 강력한 이 나라의 국방력이다. 실로, 나라와 민족을 품고 뜨겁게 기도하던 박윤식 원로목사는 대한민국의 병거와 마병이자(왕하 13:14), 대한민국을 밝히는 등불이었다(삼하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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