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부] 박윤식 원로목사의 설교_사람은 어디로 돌아가느냐?

사람은 어디로 돌아가느냐?
창 2:7-9
에덴 동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생명나무, 그리고 각종 나무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2장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에 이끌어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좋지 못한 악한 것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동산나무의 각종 실과는 임의로 따먹되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큼은 따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따먹으면 “정녕, 반드시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아내 하와가 뱀에게 유혹 당해 시험에 들고, 생령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태, “영^육이 분리되는”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됐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롬 3:23),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 6:23). 이 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유황불에 던져집니다(계 20:14). 그래서 죄지은 결과,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사람 때문에 땅은 저주 받고, 저주 받은 땅은 사람한테 가시와 엉겅퀴를 주었으며,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창 3:17-19).
불은 마지막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불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절대로 화장(火葬)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레 18장, 20:14, 신 27장).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도전하는 자, 하나님이 보낸 사자와 선지자와 제사장을 비방하고 욕하는 자들을 불에 태워서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민 11:1-3, 16:25-35). 간음한 남녀, 장모와 관계한 자는 불에 태워 죽이라고 했습니다(레 20:14). 또한 제사장의 딸과 간음한 사람은 용서하지 말고, 불살라 죽이라고 모세에게 명령했습니다(레 21:1-9).
성경을 볼 때 불은 “마지막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의로움과 경건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영은 음부에 떨어지고 예수 믿은 영혼은 낙원에 가게 되는데, 낙원에 있던 영혼은 주께서 재림할 때 천 년이 지나더라도 그 원소가 소멸하지 않고 살아있어서 죽은 시체로부터 자기를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했다가 불이 나와서 그들을 삼켰고 죽임을 당했습니다(레10:1-2). 스보임, 아드마, 소돔과 고모라 이 네 도성도 간음과 행악의 죄악이 가득하여 결국엔 유황불이 내리는 심판을 받았습니다(창 19:1-24). 저주 받을 죄악을 저지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불에 태우고, 캄캄하고 빛이 없는 음부에 떨어지지만, 믿음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편안히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신 29:23, 욥 18:15, 시 12:6, 사 30:33, 겔38:22, 눅 17:29, 계 9:17, 14:10, 19:20, 20:10, 21;8, 참고-욥 18:15, 시 18:8, 50:3, 78:63).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고, 질투하는 하나님입니다(신 4:24, 출 24:17, 히 12:29, 신 9:3, 사10:16-18, 29:6, 30:27, 30, 출 3:2, 19:18, 습1:8, 계 20:14-15). 또한 하나님은 불 가운데서 우리 믿음을 시험하십니다(고전 1장, 2:3, 3:12-15, 신 4:33-36, 7:5, 25, 9:21, 32:22, 수 7:1-26). 그리고 거짓 예언하는 자들은 다 불에 태워서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겔 23:25, 렘 14:13-22, 29:21-23).
성도는 약속의 땅,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세겜 땅, 상수리나무 밑에 도착했을 때, 이 땅을 너희 자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섭리 가운데 하나님의 자손들은 그 약속의 땅에 조상의 뼈가 묻혀 있는 것을 보고, 믿으며 그 땅을 고향으로 삼을 수가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차지할 본향이며, 본적지, 하늘 나라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이 후손들에게 고향이 되려면, 믿음의 조상 3대(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뼈가 세겜 땅에 묻혀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헷족속 에브론이 이러한 비밀을 알았다면 가나안 땅 가운데 제일 명당을 아브라함에게 팔아넘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자손에게 본향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고향인 갈대아 우르에서 떠났고, 세겜 땅 상수리나무 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땅을 은 100개를 주고 사게 됩니다. 아브라함, 야곱, 이삭 이 믿음의 3대가 매장된 땅이 장차 믿음의 후손들의 본향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나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을 사모하였습니다(히 11:13-16). 요셉 또한 “나 죽은 다음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한테 맹세한 가나안 땅에 내 뼈를 가지고 가라”고 유언하므로, 모세가 그 뼈를 가지고 탈출하여 결국 세겜 땅에 묻히게 됩니다(출 13:19). 결국 그 땅이 기념되고, 영원한 본향이 되기 위해서는 직접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과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이 그 땅을 떠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겜”은 약속의 땅입니다. 가장 중요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와서 그 먼 길 세겜에까지 찾아가서 장막을 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세겜 땅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묻혀 있는 비밀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지도 못하면서 ‘주여, 주여’ 입으로만 불러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말씀의 섭리를 올바르게 깨닫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입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신 고로 말씀이 하나님이라!” 말씀은 빛이고, 생명이며, 영원합니다. 그 말씀을 의심 없이 믿음으로 마음속에 받아들였다면, 말씀이 죽은 송장같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속에서 그 말씀이 요동칩니다. 살아서 움직이며, 말씀이 소리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있습니다(눅 20:37-38). 예수님이 우리를 생령으로 만들어 주시고, 생명나무를 따먹게 해주고, 죽지 않고 살아서 에녹과 엘리야같이 이 땅에서 변화돼서 하늘나라에 올라 간다는 그 약속을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이것이 만화에 나오는 것 같은 이야기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성경을 볼 때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 분명합니다(요 11:25-26).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벌떼같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 성 과부의 독자, 사랑하는 나사로, 이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이방 사도로 부르심 받았던 바울, 베드로도 기도 한 마디에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존재들입니다.
성령 받은 성도는 영생할 수 있는 존재인데 반하여 음령, 예수 믿지 않는 죽은 영은 스올에 묻힌 존재가 됩니다. “스올”은 히브리말인데 “음부”라는 뜻이 있습니다(욘 2:2). “죽은 자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인데, “악마의 거주지”를 뜻합니다. 신약에 와서는 무저갱, 지옥, 음부 등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눅 8:31, 계 9:1-2). 구약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 조상의 하나님입니다(출 3:6, 4:5, 롬 3, 4, 5:12, 6:23, 약1:15). 보통 우리가 말하는 “죽음”이란 육체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살아 움직이고 있는 인간도 죽은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마 8:22, 계 3:1).
그 다음에 또 죽은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구하지도 않고, 자기 일만 구하고, 세상의 일락을 추구하는 자입니다. 세상의 나쁜 것은 골라서 찾아다니는 사람, 남에게 돈을 꾸고 갚지 않으며, 오만 잔꾀와 계략으로 거짓만 일삼는 자들, 일락을 쫓는 자들은 멀쩡하게 살아있으나 하나님께서 볼 때는 죽은 것과 같습니다(눅 8:14, 딤전 5:6). 성경은 인간을 산 자로 보지 않습니다. 아담이 범죄 후에도 오랜 기간 죽지 않고 살아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않고 악한 영이 거하면,. 주인이 다르고, 소속이 다르며, 하늘 차원이 아니라 땅의 차원이면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1에는 ‘위엣 것을 찾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 11:1).
그러므로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롬 6:23).
그 사망은 음부와 함께 유황불과 불 못에 던져집니다. 사망과 음부도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유황불에 집어 던지는데, 음부에 갔다고 끝이 아니라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는 둘째 사망이 있는 것입니다(계 20:14). 다시는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절대 우리 부모님들이 또 형제가 떠났을때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반드시 땅을 사서 땅에 정중히 모시는 그러한 역사가 있기를 주의이름으로 부탁하겠습니다. 살인 강도였지만 우편 강도는 십자가 상에서 오늘날까지 주님을 위해서 변론하고 있습니다. 좌편에 있던 강도가 예수님을 비방하는 순간에 그는 예수님을 변론하며 좌편 강도를 책망했고, 자기 영혼을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오늘”을 우편 강도에게 상으로 주셨습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그 오늘은 시공간에 제한을 받는 오늘이 아니라, 영원한 오늘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마지막 때 어느 누가 와서 ‘오늘’이라 말씀할 때,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말라. 그 말씀에 순종하라(히 3-4장).”
신명기 18:15-18을 볼 때 하나님이 예언 하시기를, “마지막 때 모세 같은 한 사람을 일으키는데 그는 선지자라. 마지막 때 그분이 말씀할 때 불신을 품지 말고, 그 모든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행 3:22).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히 11:13-16).
우리의 영혼이 땅에 묻히는 게 아니라 낙원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평생 믿었다고 하면서 그 영혼이 낙원에 가 있어야지, 음부에 캄캄한 데 지옥에 가서 있으면 그 얼마나 억울한 노릇입니까? 성경 말씀을 항상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후손에게 잘 가르쳐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대로 우리의 육신을 땅에 임시 보관하여 편안히 주 안에서 잠자는 성도들은 주님 재림할 때에 천군 천사, 천사장의 호령과 함께 총 부활하는 날을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살전 4:13-16). 그래서 생령이 되어, 다시 우리의 변화의 세계에서 영, 육간 영원히 죄가 없고, 사망도 없고, 죽음이 없고, 유혹도 없고, 나쁜 생각도 없고, 그 세계 세세 무궁토록 영원한 기업을 차지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2000년 7월 26일 수요예배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