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1
고후 1:3-11
(제 25-31호)
환난 중에 위로의 유산을 받자
고후 1:3-11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편지한 내용으로, 고린도 교회는 환난이 충만하였지만, 하나님의 위로가 충만하였고, 그에 따른 전도가 충만했으며, 감사가 충만하였습니다. 고후 1:3-11에는 ‘환난’이라는 단어가 7번 나오고, ‘위로’라는 단어가 10번 나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도 신앙생활 가운데 어떤 환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위로가 충만히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위로는 하나님께서 어루만져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볼 때, ‘위로’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어루만져 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집안에서 부모가 자녀의 엉덩이를 가볍게 살살 두드려 주면서 달래 주듯이 하나님께서 환난을 당하는 성도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위로’라는 히브리어는 ‘울고 있는 아기에게 어머니가 젖을 물려 준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갓난아이가 울고 있을 때, 젖을 물려 주면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이 우는 아기에게 전달됩니다. 마찬가지로, 환난 당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어려움을 당한 성도와 함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는 축복을 받아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환난과 고난이 동질의 또 다른 환난과 고난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 복음 운동의 생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환난을 당할 때 남을 위로해 주기를 꺼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가 충만한 기독교인은 어려움을 당한 성도를 도와주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신께서도 십자가에 고통을 당하셨지만 눅 23:34을 볼 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 인류를 위해 기도하신 것을 볼 때, 기독교 복음의 생리는 고난이 있어도 남을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위로는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신다는 것은 어디를 가든지 함께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 14:25-26을 볼 때,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14:26을 볼 때, ‘보혜사’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파라클레토스’로, ‘대변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말도 못 할 정도로 힘들 때, 성령님께서 대변자가 되어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해 주십니다(롬 8:26).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절대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를 붙잡아 주고, 권면해 주고, 대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한 손에는 환난을 붙잡고, 한 손에는 위로를 붙잡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 1장을 볼 때, 환난과 위로는 정비례한다는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고후 1:5을 볼 때,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우리가 환난을 당해도 기도로 부르짖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건져 주시며 위로해 주십니다(시 50:15).
3. 하나님의 위로는 환난 당한 성도의 마음을 깨닫게 합니다.
고후 1장을 볼 때, 너무나 많은 환난을 겪고 있었던 사도 바울의 마음에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므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너무 많은 환난을 당하였지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기 위해서 환난을 계속 받게 된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후 1:9을 볼 때,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환난을 많이 당할수록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고난당한 성도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면, 어떤 환난에서도 소망을 갖게 되며 깨닫게 됩니다. 고후 1:7을 볼 때,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나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때,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을 깨닫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을 정도로 힘든 환난 앞에서 자기 자신도 믿을 수 없음을 통감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환난 받을수록 하나님만 더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 각자의 마음에 함께하지 않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뜻을 깨닫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결론. 하나님의 위로는 확실한 신앙 체험을 하게 합니다.
성도가 환난 당할 때,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구원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후 1:10을 볼 때,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진정한 하나님의 위로는 큰 위기가 왔을 때, 하나님께서 건져 주시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전하다가 넘치는 수고와 여러 번 계속된 감옥 생활을 했고, 수없이 매를 맞고, 죽을 뻔하였고,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과,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는 고난을 겪었습니다(고후 11:23-7).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고난을 겪을 때마다 도와주시는 확실한 신앙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어떤 어려움 가운데에도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체험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자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