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4
고후 8:1-7
제25-46호
어떠한 감사를 드리며 살아야 하는가?
고후 8:1-7
신앙생활 가운데 감사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없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배신하는 죄가 됩니다(시 50:22-23). 그러면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께 어떤 감사를 바쳐야 합니까? 물질이 많고 적은 것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를 바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를 위하여 어떠한 감사 생활을 해야 합니까?
1. 깨닫는 마음의 감사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수억 원을 바칠지라도, 깨달음이 없는 감사는 받지 않으십니다. 깨닫지 못하는 마음은 짐승의 마음과 같기 때문입니다(시 49:20). 하나님께서는 물질의 많고 적음에 관심을 두시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깨달음이 없으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깝게 느껴지며, 감사를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 받지 않으십니다. 눅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가 ‘곡식이 너무 많아 쌓아 둘 곳이 없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하고 자신에게만 부요한 사람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눅 12:21). 눅 12장의 부자는 자신의 풍성한 소출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받은 것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깨닫는 마음의 넉넉함의 문제입니다. 마음이 넉넉해야 남을 돕고, 하나님께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소유가 많은 것에 있지 않습니다. 깨닫는 마음이 넉넉해야 행복합니다. 깊이 깨닫고 나면, 하나님께 머리가 숙어집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께 머리가 숙어지지 않습니다.
2. 몸으로 실천하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마음으로만 드려도 안 됩니다. 몸으로 실천하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눅 7장에 보면, 당시 지도층에 있던 부자 바리새인 한 사람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보고자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관습으로는, 손님을 맞이할 때 물을 준비해 손과 발을 씻게 하고, 수건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초대한 그 바리새인은 물조차 내어 주지 않는 등 매우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습니다(눅 7:36). 이때, 그 동네에서 죄인으로 알려진 한 여자가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들어와, 아무 말 없이 예수님의 발 곁에 섰습니다(눅 7:37-38). 이 여인은 울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았으며,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시며, “많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나를 많이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7:47). 향유 담은 옥합을 깨뜨린 이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신 것은, 자신의 죄를 깨달은 것에 대한 감사를 몸으로 직접 보여 드린 행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의 감사를 매우 크게 여기셔서,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함께 기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4:9).
3. 물질로 확인하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고후 8장이 기록된 배경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가난에 처해 있던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 즉 갈라디아, 고린도, 빌립보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도록 구제 헌금(연보)을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특별히 사랑하는 제자 디도를 마게도냐 교회들에 보내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게도냐 교회들은 자신들 또한 어려운 형편이었는데도 기대 이상으로 풍성한 헌금을 드렸습니다(고후 8:1–2). 성경을 볼 때, 감사헌금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1) 힘에 부치지 않을 정도로 하는 감사입니다. 이러한 감사는 부담 없는 감사입니다.
2) 자기 힘에 버금갈 정도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이러한 감사는 마음에 약간의 부담이 남습니다. ‘내가 조금만 할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3) 자기 힘에 지나치게 드리는 감사(넘치는 감사)입니다. 이러한 감사는 허리가 휘청일 만큼, 그러나 진심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입니다.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은 위의 세 번째의 감사를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가난 가운데서도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과 자원함으로 풍성한 연보를 드렸습니다(고후 8:1–24).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 된 백성이요, 영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못 믿을 것 없고, 못 드릴 것 없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적게 뿌리는 감사가 아니라 많이 뿌리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고후 9:6을 볼 때,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마 6:19은 세상의 보물이 허무함을 경고합니다--“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害)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이처럼 사라질 세상의 보물에 연연(戀戀)하지 말고, 영원한 가치에 투자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음 세 가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깨닫는 감사, 몸으로 실천하는 감사, 물질로 확증하는 감사입니다. 이러한 감사를 드리면서, 우리는 적게 뿌리는 감사가 아니라 많이 뿌리는 감사 생활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색함이나 억지로, 또는 체면을 차리기 위해 헌금해서는 안 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고후 9:7). 하나님께서는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드리는 헌신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몸으로 봉사하게 하시며, 물질로도 감사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속적이고 풍성한 감사 생활을 이어 가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