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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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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7:13-14

(제26-4호)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한다
7:13-14

 

하나님께서는 인생 가운데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함께 주셔서, 우리가 미래에 대해 자만하거나 절망하지 않게 하십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라는 말씀은 단순히 행복을 기뻐하라는 뜻이 아니라 감사와 선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라는 신앙적 명령이며,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는 말씀은 자신과 하나님의 뜻을 깊이 성찰하라는 교훈입니다. 결국, 두 날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1. 형통한 날에는 기뻐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전 7:14을 볼 때,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형통한 날이란 번영과 평안이 있는 날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형통한 날에는 자연스럽게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뻐하라는 말의 히브리어 원어에는 단순히 즐거워하라는 뜻을 넘어, ‘좋게 살라, 선하게 살라, 만족하며 감사함으로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1:21).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며 감사할 때, 그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그러면 왜 우리의 삶에는 형통한 날만이 아니라 곤고한 날도 있는 것일까요? 형통한 날만 계속된다면, 우리는 너무 좋아서 자칫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형통한 날을 곤고한 날로 옮기시며,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지를 살피십니다. 주후 300년경에 기독교가 혹독한 박해를 받을 때, 기독교인들은 카타콤이라 불리는 지하 동굴로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깊이는 150미터, 200미터에 달했고, 한번 들어가면 쉽게 나올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자, 오히려 교회는 세속화하고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형통한 날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그날을 선하게, 거룩하게, 행복하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은혜 속에 거하는 성도입니다.

 

2. 곤고한 날에는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전 7:14을 볼 때,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때 우리에게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생각하라의 히브리어는 단순히 머리로 묵상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깊이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 곤고한 일을 만났을 때는,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곤고한 날에 무엇을 발견해야 합니까?

1)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라(1: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곤고함은 자신의 삶을 점검할 기회입니다. 인생의 곤고한 날이란,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시기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말씀대로 살지 못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2) 자신의 부족과 무능과 한계를 발견하라.

곤고한 날은 그동안 내가 잘나서 된 줄 알았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시간입니다.

3) 자신의 어리석음과 교만을 발견하라.

15장의 탕자는 아버지를 떠난 뒤에, 고난과 굶주림 속에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웠습니다(15:16).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교만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나이다”(15:18)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곤고한 날은 인간이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는 기회입니다.

 

3. 하나님이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시키시어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은 은혜입니다. 만약 우리가 미래를 다 안다면, 불안과 두려움으로 지금의 삶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직 자신만이 내일을 아시며, 우리는 오늘을 믿음으로 살게 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각자의 죽을 날을 미리 안다면, 누가 평안히 살 수 있겠습니까? 하루하루 불안 속에 살며, 하나님을 찾기보다 오히려 낙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래의 일을 모르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요, 축복입니다. 우리가 장래의 일을 다 안다면, 예배도 기도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다 아는데, 내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겠는가?” 하며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일을 감추시고, 오늘 그분을 의지하며 살게 하십니다. 우리는 나약한 피조물이며, 내일을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일을 아시는 분이 하나님 한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장래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을 믿음으로 사는 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혹시라도 사랑하는 가족의 장래 일까지 미리 안다면, 그 고통 때문에 오늘의 삶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래 일을 모르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사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며 가장 큰 평안입니다.

 

결론.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오늘 본문 전 7:13을 볼 때,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필요해서 굽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는 분명한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곧게, 곧장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경영하심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이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전 7:14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하나님의 주권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빼앗기지도 않으시며, 어떤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영원히 동일하십니다(13:8). 영원하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서 나오는 지혜 또한 영원하고 온전하며,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 중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이 뛰어들어 수정하려 해도 절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피조물이고, 하나님만이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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