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성도들이 기억하는 박윤식 원로목사_이순창
“그분은 '십자가의 사람'이자 애국지사였다.”
| 이순창 |
나는 박 목사님의 남다른 ‘나라 사랑’에 큰 감명을 받고 그분을 목회자이자 애국지사로 존경하게 되었다. 황해도 사리원에서 출생한 박윤식 목사님은 해방 후 북한에서 공산당의 민낯을 실제 목격했고, 1948년 월남해 국방경비대에서 복무하면서 여수순천 사건 진압과 지리산 빨치산 토벌전투, 6·25전쟁에 참전하여 공산주의자들의 본색을 직접 체험했다. 1951년 6월 전투 중 다리에 총상을 입어 상이용사로 전역한 박 목사님은 이 후 영혼 구원과 함께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에 젊음을 바쳤다.
교회를 설립한 이래 매주 목요일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예배’로 드렸고, 3·1절과 6·25, 광복절 등에는 다른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행사가 교회에서 빠짐없이 대대적으로 열리곤 했다. 나는 6·25 당시 인민공화국 치하에 있던 파주·문산·고양·일산 지역에서 이 지역 애국학생·청년 1백여 명을 규합해 비밀지하단체인 ‘태극단’을 조직, 조국과 자유를 되찾기 위해 지하투쟁을 했다.
그러던 중 동지 45명이 적에게 발각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한날 한시에 전원 대창에 찔려 학살당한 참변을 겪어야 했다. ‘태극단’은 당시 인공 치하에서 투쟁한 지하 구국결사체로는 그 규모나 활동이 전국에서 가장 큰 단체였다. 인민공화국이 북으로 물러간 후 대한민국 정부는 희생된 45위의 태극단 단원들을 한 곳에 모아 안장하고 이 묘역을 ‘대한민국 반공유적지 제1호’로 지정했다. 이 묘역에서는 해마다 ‘추모·위령제’가 열리는데,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박윤식 목사님은 1989년부터 5년 연속으로 이 행사에 50여명의 교회 성가대를 보내 주시고, 목사님이 추모예배를 집례하도록 배려해 주셨다. 국가의 지원도 없이 태극단을 꾸려 나가는 나로서는 감사헌금 한 번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박윤식 목사님께서는 나를 만날 때마다 “아직까지 그 일(반공 애국활동) 하고 있지?”하시면서 “그 일 해야 해! 내가 목사 안 됐다면, 누가 알아주지 않고 힘들어도 내가 그런 일 했을 거야.” 라고 격려해 주시곤 했다.
박윤식 목사님은 이 시대의 위대한 목회자이자 진정한 애국지사였다.
목사님, 사랑합니다. 아니, 존경합니다. 주신 구속사 말씀 품에 안고 교회 발전에 이배 삼배 노력하겠습니다.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