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국내외 선교의 역사_아시아 선교
국내외
선교의 역사
_ 아시아 선교
싱가폴 지교회는 동남아 선교의 시발점었다. 80년대 금융회사 현지 주재원으로 부임한 한 성도의 가정이 성전이 되어 성경공부가 시작됐다. 한국인 주재원들만의 가정예배로 시작해 점차 중국계 현지인들로 확장됐고 이들이 자신들의 본국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으로 돌아가 또 다른 말씀의 터전이 됐다. 박 원로목사는 80년대 후반부터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을 다니며 직접 성경을 가르쳤다. 90년대는 해외선교의 ‘부흥기’였다. 특히 국내에서 이단공세가 본격화되어 서울 본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은 기간 도리어 해외 지교회에서는 풍성한 말씀의 잔치를 맛볼 수 있었다.
우측에서 두번째, 호리우치 아키라 목사
일본은 1960년대부터 오사카 등을 오가며 말씀의 씨알을 뿌렸고 일본 목회자, 젊은 신학도와의 교류 등을 통해 구속사 말씀을 전달했다. 중국은 지역별로 구속사 말씀이 전파된 방식에 차이가 있다. 다만 한국인 목회자를 파송해 개척한 것이 아니라, 구속사 말씀을 전달받은 현지인들이 자체적으로 교회를 세우고, 지교회로 인정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해외선교는 다양한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 영역이 확장된다. 2011년 미국 LA 수정교회에서 열린 LA 지역 첫 구속사 세미나는 ‘LA-자카르타’의 관계 만으로도 그 상호작용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앞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몇 차례 열린 구속사 세미나가 현지 교계를 뒤흔들 정도였다는 소식이 미국 LA까지 전달되고, 이는 LA 구속사 세미나에 현지인도네시아인 교계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LA에서의 호평은 자카르타에도 긍정적으로 전달돼 상호간에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이 구조는 자카르타-LA-자카르타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화교계 인도네시아인들은 미국 뿐 아니라 이후 말레이시아, 중국 등 이웃국가 선교와 해외 각 지교회 건설, 구속사 시리즈 전파 등에도 큰기여를 하게된다. 나아가 동남아는 이슬람 세계로 통하는 전초기지로서 더욱 더 큰 선교의 비전을 갖게한다.
구속사 세미나는 한번 개최되면 반드시 이웃 도시, 이웃 국가로 확산됐다. “우리 나라, 우리 고향에서도 세미나를 열어줄 수 있느냐?”는 간청에 ‘구속사 세미나팀’은 인도, 스리랑카, 네팔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다. 이같은 ‘연쇄성’은 싱가포르 같은 ‘국제도시’일수록 더욱 효과적이었는데, ‘연쇄 작용’과 ‘상호작용’으로는 앞선 사례에서 보듯 미국이 역시 세계인의 집결지요, 사통팔달의 중심지였다.
비로소, 성도들과 그의 동역자들은 사도 바울이 세계 전도를 위해 로마로 갔던 일을 떠올리고 있다. ‘세계의 도시’ 로마에서 ‘만국 공용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된 세계 각 민족 사람들이 고국의 복음화에 어떤 방식으로든 밑거름이 되었던 것처럼 실로 70, 80년대 ‘미국’과 ‘영어’는 세계선교로 가는 ‘모든 길’과도 같았다.
사도 바울의 시대 이방에 교회가 세워지 더라도 먼저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전해받은 유대인들이 그 출발점이 됐고, 이어 이방인이 세례를 받고 자기 민족에 복음을 전파했듯, 구속사 말씀의 교회도 아무런 연고 없이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훈련받은 말씀의 성도가 ‘접족지(接足地)’가 되어 성령의 활동 공간을 제공해왔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박윤식 원로목사의 미국 선교는 그 방법과 방향, 합목적성이 적확했다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박 원로목사는 이 ‘미국 선교’의 위력을 내다보고 일찍이 미국인을 말씀으로 가르쳐 목회자로 길러내는 등 구속사 시리즈의 ‘폭발’ 이후도 준비해왔다.
박 원로목사는 많은 눈물과 기도로 성도 하나하나를 ‘말씀의 씨알’로 길러냈다. “외국에 있는 성도 하나마다 친자식 돌보듯 챙기고 눈물로 기도하셨다”는 게 동역자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90년대 본격적으로 해외 지교회에 선교사들을 보낼 때 성도 각자 개개인의 문제와 교회의 세부적인 일까지 세심하게 살피었다.“엄하고 무섭게 야단을 치기도 하고, 때로는 한없이 자상하게 대하며 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으셨다”고 한 선교사는 전했다.

선교사들 역시 말씀을 갈급해하는 곳에, 일과 문제가 있는 곳에 파견돼 해외선교의 일부를 수행했다. 예배와 성경공부만이 아니었다. 파송된 교역자를 접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면, 청소하고 밥 해먹이고 아이까지 돌봐줘야 하는 등 박 원로목사의 발자취를 밟아야 할 때도 적지 않았다.
이 선교사역에 얼마나 많은 사연과 기적, 은혜가 있었는지, 필설로 다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국내외 할 것 없이 말씀의 씨알들은 곳곳에 뿌려져있다. 아쉽게도 그 지점들은 직접 씨앗을 뿌린 박윤식 원로목사 외에는 잘알지 못한다. 예컨대 박 원로목사의 설교에 간혹 등장했던, ‘남미의 볼리비아’는 언젠가 박 원로목사가 손수 찾아가 말씀의 씨알을 심어놓은 곳으로, 남은 우리는 어느 곳에 또 그런 믿음의 씨알들이 묻혀있는지 알기 어렵다.
다만 ‘가정교회’가 언제든 ‘교회’로 성장해온 것을 목도해온 성도들은 ‘잠재적인’ 말씀의 지교회들이 곳곳에 산재해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내다보게 된다. 또한 최근 런던에서 구속사 세미나가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근에 장·단기로 체류중인 말씀의 식구 십수명이 몰려들어 즉석에서 하나의 교회를 형성한 것을 볼때에, 해외 곳곳에 퍼져있는 많은 평강제일교회 성도들 역시 ‘잠재적인’ 교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열방이 구속사 말씀 앞에 몰려오는 위대한 비전으로 달려온 박윤식 원로목사의 50여년 선교 사역은, 이제 성령의 역사로 남은 동역자와 성도들을 통해 완수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하며 기꺼운 헌신을 그의 별세를 계기로 새삼 다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