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6
마 3:1-12
(제25-39호)
타작마당에 놓여 있는 알곡이냐, 쭉정이냐?
마 3:1-12
믿음의 성도로서 타작마당에 놓인 알곡처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신앙이 되려면, 각자 자신의 신앙 자리를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늘의 영적 존재인 천사들에게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게 하셨습니다(유 1:6).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심판의 때까지 신앙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알곡과 같은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1. 타작마당은 시기적으로 종말을 의미합니다.
자연 농작물의 타작마당은 언제나 그 농작물의 끝을 의미합니다. 신앙적으로도 타작마당은 전 인류가 심판받는 종말의 시기를 말합니다. 이것은 구약 선지자들이 믿음으로 한결같이 주장한 말씀입니다. 히 1:1-2을 볼 때,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시기가 언제인지에 대해서 포도원의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도원 비유는, 어느 포도원 주인이 실과를 받기 위해 보낸 종들을 농부들이 계속 죽이자, 마지막에 신령한 포도원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음을 말씀하는 내용입니다(마 21:33-41). 이처럼 성경을 볼 때, 이 땅에 만군의 구세주이신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실 때부터 세상 끝날 때까지를 종말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종말 가운데 제일 끝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타작마당에 놓여 있는 알곡이냐, 쭉정이냐’를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2천 년 전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한테 하시는 말씀으로 생각하지 말고, 오늘날 우리 각자를 심판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타작마당과 같은 종말의 시기로 느끼게 하는 말씀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타작마당은 알곡이 주인의 손에 붙잡히는 곳입니다.
마 3:12의 타작마당은 곡식 타작만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타작마당은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세우는 마당입니다. 갈라 세운다는 것은 나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같은 교회 성도이지만 알곡과 쭉정이와 같은 신앙으로 갈라지’지 말고, 모두 알곡과 같은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눅 3:17). 농부는 키를 가지고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세웁니다. 키는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세우는 바람입니다. 그 키의 바람에 날리지 않는 알곡은 주인의 손에 붙잡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는 생활이 행복한 생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믿는 성도로서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는 생활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담요가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서 붙잡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시 6:6).
예수님은 타작마당의 주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키가 십자가입니다. 인류를 쭉정이와 가라지를 갈라놓은 기계가 십자가입니다. 그가 우리 죄를 위하여 피를 흘린 십자가 공로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갈라 세우는 키입니다. 고전 1:18의 말씀을 볼 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십자가 중심으로 살아갈 때, 불편스러운 쭉정이 같은 생각이 날아가 버리고 알곡과 같은 성도가 될 것입니다.
3. 타작마당은 쭉정이가 심판받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빛의 열매와 같은 알곡이 되지 못하면,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게 된다’고 했습니다. 마 3:10을 볼 때,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도끼’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를 의미합니다. ‘나무’는 성경 전체를 볼 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 전 세계 만민을 말씀했습니다(삿 8:8-15, 렘 5:14). ‘열매 맺지 못하여 불에 던져지는 나무’는 악인을 말씀했습니다. 마 3:12을 볼 때,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의 ‘키’는 알곡을 타작하는 도구를 말씀합니다. ‘타작마당’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이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디를 마음대로 가겠습니까? 세상 어떤 좋은 곳을 가도 역시 세상은 타작마당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자체가 ‘타작마당에 놓여 있는 우리가 알곡이냐, 쭉정이냐’를 결정짓게 하는 생활의 연속입니다. 성경을 볼 때,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인다’는 말씀은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는 신앙을 뜻합니다(마 25:34). 그러나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심’은 악한 자, 곧 불신자가 최후 심판의 날에 영원한 진노의 불에 들어감을 말씀합니다(마 25:41-46).
결론. 타작마당과 같은 세상에서 알곡 신앙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거룩한 분별을 해야 합니다.
마 25:32-33을 볼 때,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거룩한 분별을 하는 신앙은 타작마당과 같은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오른편에 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타작마당과 같은 세상을 살면서, 너는 지금 알곡의 길을 걷고 있느냐, 쭉정이의 길을 걷고 있느냐?” 하고 물으실 때, 우리는 오른편에 속한 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답을 해야 합니다.
2) 거룩한 분리를 해야 합니다.
믿는 성도로서 우리는 타작마당과 같은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항상 거룩한 분리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계 22:11).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세우는 장소가 타작마당이지만,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도 타작마당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우리는 가정이나 직장에서부터 거룩한 분리를 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마음에서부터 ‘쭉정이냐, 알곡이냐’를 분리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