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구원 – 누가복음 19:1-10
오늘의 구원
누가복음 19:1-10
누가복음 19장 9절을 볼 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예수님이 여리고 도성에 입성하실 때 여리고 시민들이 약 10만 명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세무서장이고, 성경을 볼 때 큰 부자라고 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여리고 도성 사람을 완전히 인간 이하, 지옥의 땔감으로 여겼기 때문에 상종도 하지 않고 죄인으로 취급했습니다. 본문 7절에 주께서 “삭개오야 빨리 내려오너라. 내가 너희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말씀하셨을 때 많은 사람이 듣고 “삭개오는 죄인인데, 다 끼리끼리 만나서 죄인의 집에 들어가는구나”라고 비꼬는 얘기들이 기록돼 있습니다. 죄 사함을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고, 죄 사함 받지 못하면 병은 절대 고쳐지지 않으며, 나아 봤자 임시변통뿐입니다. “나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교만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기 때문입니다(롬 6:23).
죄는 무조건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병 있는 사람은 최대한 빨리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120문도에게 성령이 충만히 내렸을 때, 성령 받은 사람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외국어 공부를 한 적이 없는데, 성령 받음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각 나라말을 다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 2:38) 말씀했습니다. 그때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자가 삼천 명이었습니다.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모든 생활이 통쾌, 유쾌해지고 근심과 걱정이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행 3:19).
죄는 병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알고 지었건 모르고 지었건 죄가 있으면 병에 걸리게 돼 있습니다. 예수님이 40세 된 앉은뱅이를 고쳐 준 후 얼마 있다가 성전에서 만났을 때 “심한 병에 걸리지 않도록 다시는 죄 범하지 말라!”고 권고해 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심장 폐부를 다 아시는 분이고, 우리의 모든 육체의 세포까지 다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누구한테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요 2:24-25).
이 시간에 저와 여러분들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 다 아시는 예수님이 우리 교회에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이 이 시간에 오셔서 죄질 수밖에 없는 사람을 미리 아십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영원한 지옥이 마련되었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만세 전에 선택된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사람들도 미리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구원입니다. 오늘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는 말씀을 다 받는 축복된 걸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다’고 하는 집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양심상 속이지 않는 집에만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리고 도성에 예수님이 입성한다는 소문이 났을 때 수만 명이 길가에 나왔습니다. 성경 볼 때 삭개오는 키가 작았으므로, 예수를 보기 위해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간 사람이 한두 사람이겠습니까? 주님이 제자한테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세리장 삭개오의 이름만을 부르며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오늘, 네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말씀하셨습니다.
보이는 세계, 물질세계에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모릅니다. 영의 세계만 알 수 있습니다. 이미 그의 믿음과 중심을 보시고 삭개오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삭개오는 남의 것을 공갈과 협박, 토색으로 뺏었다면 4배로 갚겠다고 결심하고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삭개오야, 내 말로 네 죄 사했다. 오늘, 네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다는 소문이 퍼져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얼마나 인산인해로 모였는지, 바다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한 반신불수의 친구들이 생각다 못해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서 주인한테 허락도 받지 않고, 지붕에 구멍을 뚫어 병자를 밑으로 내렸습니다. 모두가 남의 집을 파괴한다고 욕할 때 예수님은 태연자약합니다. 흙이 떨어지고, 돌가루가 떨어지고 먼지가 나도 아무 소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을 볼 때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소자야! 안심하라 내 말로 네 죄 사함 받았느니라” 말씀하시니 수많은 종교 지도자, 서기관들이 쑥덕거리며 참람하다고 했습니다(막 2:5). “하나님 외에는 죄를 사할 자가 없는데 목수의 아들 주제에, 네가 누구이기에 죄를 사하느냐?”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 마음을 아시고, ‘내가 죄 사하는 권세가 있는지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하신 겁니다. 반신불수 환자에게 “일어나라!” 말씀하시니 그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병자가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을 봤습니다. ‘이래도 내게 죄 사하는 권세가 없느냐’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입니다.
죄 사함으로 인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으로 죄 사해 줄 때 죄가 10가지 면 한 가지만 사해 주시는 게 아니라 10가지 모두를 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세리장, 고급 공무원으로 부정축재(不正蓄財)한 자입니다. 유대인의 피를 빨아먹는 자로 어떻게 해서든지 세금을 많이 거둬서 빌라도와 로마 황제에게 갖다 바쳐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세무 공무원을 풀어서 백성들을 조사하고 얼마나 괴롭혔겠습니까? 한번 상상해 보세요. 성경을 볼 때 부자지만 그 고민이 떠나지 않았어요.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있는 자는 더 가지기를 원하고, 없는 사람은 그대로 정부나 욕하고, 나라에 대해서 좋지 못한 말을 하며 가진 자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긁어모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아내, 자식들을 잘 먹이고 했지만, 그 마음은 허전하기 짝이 없습니다. 텅텅 비어 있는 깡통 소리에 지나지 않았고, 늘 불안한 마음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죄책감으로 고민하고 있었고, 유대 사회에서 철저하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늘 따가워서,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갈 곳도 없고, 자기 부하를 풀어서 무리하게 세금을 거둬서, 로마 정부의 앞잡이 노릇이나 하고 있으니, 그 마음이 편할 리가 있겠습니까? 삭개오도 사람이고, 양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보셨습니다. 우연히 여리고를 지나가다가 삭개오를 본 게 아닙니다. 하나의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죠. 높고 높은 보좌에서 영광을 버리시고, 죄악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과 행하신 기사이적을 보세요. 예수님은 신이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10만 명이 넘는 여리고 도성에, 삭개오 한 사람 때문에 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하고, 아름다운 보배입니까? 그런데 자기 자신의 가치를 몰라요. 그래서 마음도 세상에 줬다가, 몸도 세상에 굴려 봤다가, 우수사려의 한숨과 짓눌리는 아픔, 괴로움으로 아내, 자식, 남편을 보아도, 하는 사업을 봐도, 마음에 차는 게 없이 늘 허전하고 공허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된다더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더라. 병자를 고치더라. 소경, 앉은뱅이, 문둥병이 순간적으로 낫는다더라’는 예수님의 소문을 모두가 들었고, 그 예수님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키가 작았던 삭개오는 생각다 못해 뽕나무에 올라가서 어떤 분인가 궁금해하며 주님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미 다 아시는 주님께서 수만 명이 있는 가운데 “삭개오야!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말씀하시니 너무 기뻐서 주 앞에 달려 나왔습니다. “너 죄를 지었느냐? 남의 재물을 빼앗았느냐?” 주께서 묻지 않았습니다. 빛 가운데서는 벌거벗은 거 같이 드러나서 도무지 숨길 수가 없습니다(요 2:24-25, 히 4:13).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삭개오의 심정을 보셨습니다. 삭개오가 말한 대로 네 배로 갚는 그 모습을 이미 보시고 죄 사함 받았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네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라고 했습니다. 죄 사함 받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구원이 머물 수 있습니다. “딸아, 안심하라. 내 말로 네 죄 사했다.” 죄 사함 받는 순간 병이 낫는 거 보세요.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라!” 딸 고치는 것, 귀신 들린 아들 고치는 것이 소원이었던 사람들에게 믿음에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막 9: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 집, 사업장, 교회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는 말씀을 듣고 주님을 모시고, 집에 돌아가는 산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죄인의 집에 찾아오셔서 “내가 너희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는 말씀을 듣고 고백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죄를 범한 사람인데 그래도 우리 집에 오시겠습니까?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했습니다(마 9:13). 회개까지 예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회개하지 않았는데 그 중심에 회개하는 모습을 미리 다 보시고 용서해 주시며 “네 집에 구원이 도착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너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백날 믿어도 내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인지 아닌지 모르고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구원이 네 집에 이르렀어! 너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야!”라고 말씀하시는데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할 자가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거둬 갈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의 성과 이름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하늘나라의 일월성신, 그 수많은 별의 이름을 다 아시는 예수님께서 여리고 도성에 십만 명 중에 삭개오의 이름을 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알고 믿고 여러분들이 행하세요. 내가 죄지은 거 본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양심이 보고 있습니다(롬 2:15). 죄질 때 거기 바람벽이 있으면 바람벽이 보고, 천장이 있으면 천장이 보고, 이부자리가 보고, 방바닥이 보고, 나무가 본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참고 합 2:11, 롬 8:22).
삭개오에게 관심과 애정을 주신 것은 끝까지 책임지고,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 할 일도 많은데 그것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도성까지 오시는 주의 발자취를 보세요. 나와 여러분을 찾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계속 질병을 앓고 있겠습니까? 옛날 삭개오, 옛날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평강제일교회의 성도들에게도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할 때 삭개오같이 기뻐하며 영접하는 거룩한 믿음의 모습들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확신을 두고, 믿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말씀은 전하는 자와 믿는 자, 마음들이 하나가 되고 믿음이 하나가 돼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보셨고, 속히 내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할까 말까가 아니라 반드시 내가 너희 집에서 머물러야 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다 잊어버려도 누가복음 19장 5절 말씀은 내 말씀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모셔가시길 바랍니다.
누가복음 19: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했습니다. 혼신을 다했고, 정성을 다했으며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세리장이라는 직책도 직분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자기 마음에 예수님으로 꽉 차 있었고, 그 순간만큼은 자기 아내, 자기 자식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겉으로만 나를 영접하는지 중심에서 나를 영접하는지 그것을 보십니다. 사람들이 보고 수군댔습니다. ‘예수는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죄인의 집에 가는 것을 보니 저 예수 가짜인가’ 쑥덕거렸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죄에 관해 묻지도 않았습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으며, 만일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라고 삭개오가 말했을 때, 그 말만 들었던 것이 아니라 삭개오의 집에서 재산이 절반 이상 나가는 것을 주님은 이미 보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예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선언했고, 창조했습니다. 참 놀라운 말씀이죠.
많은 사람이 할 수 없었으나, 삭개오만큼은 할 수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나 그 무성한 소문에 어떤 사람인가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서 할 수 없이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눅 19:3).
삭개오는 이러한 간절한 마음, 한번 보고자 하는 마음, 한번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 마음을 보고 가다가 섰기 때문입니다. 가다가 서서, 우러러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너무 좋아서 마음을 다해 영접했고, 묻지 않아도 그 죄를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할 때 모든 질병이 본인이 모르게 다 달아날 줄로 믿습니다.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그 말씀 속에는 ‘내가 너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안다. 안심하라. 걱정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는 이야기가 다 함축돼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 전에 주님이 벌써 우리를 아십니다(요 1:47-48).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 갈등이 있고, 속상해하는 그 어두운 부분, 또 연약하고, 줏대가 없이 할까 말까 망설이는 그 마음을 다 보고 계십니다. 믿어지면 믿음으로 확정하고 간구하면 됩니다. 흔들림이 없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고전 15:57-58).
예수님은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 우리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인격을 다 세워 줍니다. 나 같은 죄인에게 주님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삭개오가 몸 둘 바를 몰랐죠?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가진 거 없고, 배우지도 못하고, 족보도 없다는 이유로 무시해도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소속은 땅이 아니라 하늘이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친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각자에게 다정하게 다가오셔서 “아무개야! 걱정하지 마! 내가 왔다”고 하는 그 말씀을 듣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는 모르고 오시지 않고, 우리의 추잡한 것, 우리의 사모하는 마음을 다 아시고 찾아오신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삭개오가 당시에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았다면 평강제일교회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랑과 은총을 받는 순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우리는 받은 바 은혜를 놓치지 말고 기뻐해야 합니다.
“오늘 저녁에 하룻밤을 묵고 가겠다!” 하시니 뽕나무에서 날아서 내려왔는지, 기어서 내려왔는지 모를 정도로, 급히 내려오는 바람에 손이 다친 줄도 모르게 너무 좋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옷자락을 만질 정도로 가까이 와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너무나 의도적이어서,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리고, 다시 여리고 도성에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외식적이고, 무감각하고, 외로운 척하는, 마음이 닫힌 자칭 의인이라 하는 분이 아닙니다.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죄인의 집에 가서 음식을 먹고 마셨습니다. 세리 집에 가서도 먹고 마셨습니다. 가난한 자, 불쌍한 자, 병든 자 집에 가서 앉아 냉수라도 마셨습니다.
사랑하는 평강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자기 죄 때문에, 자기가 해결할 무거운 짐이 있어서 머리가 깨지고 찢어질 정도로 고뇌 속에 번민하고 있을 때, 나 같은 거 구원받지 못할 거라 절망하고 있을 때 주님이 찾아오신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실 때 주님의 뜨거운 사랑, 긍휼, 은혜, 은총, 자비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꼭 붙잡으세요.
우리도 똑같은 죄인들인데 우리 중에 삭개오를 물리칠 자가 있습니까?
우리는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죄인 삭개오와 똑같습니다. 그러나 병이 없는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지만 우리처럼 죄가 많아서 부족하고, 아직 회개도 하지 못해 병에 걸려 있는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이 나약해서 통회자복이 안 나오는 것을 주님이 아시고, 이 시간에 찾아오셔서 우리들의 마음과 믿음, 살겠다는 그 의지를 보시고, “딸아! 안심하라. 내 말로 네 죄 사했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항상 강조하지만 회개하면 어떠한 죄도 다 용서받는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시 34:18, 51:17, 147:3, 사 61:1, 마 20:28).
캄캄하고 어두운 곳에서는 아무것도 분별할 수가 없지만 빛나는 태양빛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나고 맙니다.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햇빛보다 더 밝은 영광의 빛을 자기 자신의 마음에 비춘 것입니다(고후 4:6).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는 숨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히 4:13).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 주의 사랑과 긍휼을 받고 깨닫는 순간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죄악을 명백히 하나님이 보시고 책망하지 않고, 묻지 않고, “내가 너희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는 말씀이 끝나자마자 “오늘 너희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말씀하실 때 이미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또 한 가지 기뻐해야 할 것은 그분이 하늘의 모든 별까지 다 세고 있고, 다 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시 147:4). 예수님은 사람들이 욕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오직 잊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을 찾으러 오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너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라는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시편 147편 4절에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다 이름대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별의 이름을 다 부르신다는 것인데 천문학 박사들이 과연 별의 이름을 몇 개나 부를 수 있겠습니까? 예레미야에게도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이미 네 이름을 알았다”라고 말씀했습니다(렘 1:5). 열왕기상 13장에 여로보암 왕이 자기 멋대로 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데 선지자에게 예언의 말씀을 주시기를 “요시야라 이름하는 사람이 와서 너의 뼈를 불살라 버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왕상 13:1-2). 요시야는 300년 후의 사람입니다. 지금부터 300년 후에 여러분들의 며느리 성이 뭐고, 손주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300년은커녕, 내일 일도 알 수 없는 무능한 인간입니다.
여로보암 왕은 여러 가지 절차들이 번거로워서 제사장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분향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살려달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고쳐 줬지만 결국 순종하지 않으므로 “장차 유대 나라의 요시야라고 하는 왕이 나타나서 너의 무덤 파헤쳐서 뼈를 가루로 만들어서 뿌리겠다”라는 무서운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해방될 때 고레스 왕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도 보세요. 그러므로 보이는 사람의 이름을 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합니까?
100년도 못사는 인생, 세상 흔적은 잠깐 지나갑니다. 별 볼 일 없는 세상인데,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기 때문에 이 땅에 오래 붙어 있으려고 주사 맞고, 병원에 입원하고 그럽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저 “필요하시면 이 땅에 두시고, 아니면 죄 많은 세상에 죄 질까 두렵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죄입니다.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하면 됩니다. 빨리 데려가 달라고 하면 죄가 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없는데 왜 빨리 데려가 달라고 합니까? 주의 뜻대로 해 달라는 지혜의 간구를 드려야 합니다. 나를 빨리 데려가 달라고 요청하면 하나님이 괘씸하게 생각하십니다. “땅에 할 일이 많으니, 이 땅에서 복음에 빚진 자로서 내 빚을 갚고 가야 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빚진 자로서 그 빚을 다 갚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야만인이나 헬라인이나 나의 원수나 어느 나라 민족 할 거 없이 생명의 복음을 받은 자로서 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롬 1:14). 사도 바울도 ‘나는 복음에 빚진 자’라고 했어요. 나는 지은 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제일 무서운 사람입니다.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모두를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삭개오처럼 다 아시는 주님이 친히 오셔서 그 죄를 용서해 주시는 축복을 받게 해 달라고 모두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기도의 용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기도 올리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삭개오같이 솔직한 신앙 고백도 없었고, 죄를 회개하지도 않았고, 주님을 만나 보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도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보고 속히 내려와서 기뻐하고 즐거워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씀만 받아서 머리만 크고 마음은 좁습니다. 깨달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깨닫지 못한 무서운 죄를 하나님 앞에 범하고 있습니다. 주여! 바라옵고 원하옵는 것은 깨닫고 믿고 행하는 역사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삭개오같이 칭찬받고, 죄 사함 받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족보를 찾아 주시는 복된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소자야 안심하라 내 말로 네 죄 사했다”라는 말씀에 반신불수가, 소경,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어떠한 질병에 걸렸든지 완전히 깨끗하게 나음을 입게 하여 주시옵소서. 반드시 이루어질 줄로 믿고 확신하면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감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00년 7월 13일 목요 구국예배 박아브라함 목사
26년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