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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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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1호(10.11.)

 

부조리한 세상과 성도의 실존적 위치

창 37:18-24, 39:7-9, 45:5-8 (참고: 왕상 21:1-16, 22: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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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동벌이(黨同伐異)라 하였으니, 일의 시비와 정의는 돌아보지 아니한 채 ‘뜻이 같은 무리는 무조건 감싸고 입장이 다른 자는 무자비하게 배척’하는 패역한 풍조를 이르는 말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 세상은 본래 공의가 온전히 구현되는 자리가 아니어서, 정직한 자가 도리어 손해를 보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핍박을 받는 모순이 그치지 아니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와 돈과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경고하였고(딤후 3:1-4), 사도 요한은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질 때에 땅의 상고들이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을 인하여 울고 애통하리라’ 증거하였습니다(계 18:2,11).

마침내, 진리의 나팔을 부는 두 증인의 죽음을 도리어 즐거워하며 서로 예물을 보내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계 11:7-10). 오늘 선포되는 엄중한 말씀을 통해, 부조리한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굳게 붙들고 서는 충성된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권력의 폭력 앞에 짓밟힌 나봇의 포도원

성경은 부조리한 세상의 실상을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고 고발합니다. 북 이스라엘 왕 아합이 자기 궁 곁에 있는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어 나물 밭을 삼고자 하였을 때, 나봇은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고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왕상 21:3). 그에게 그 포도원은 한낱 토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파와 가문에 분배하신 거룩한 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권력이 눈이 멀자 법도, 공의도 한순간에 무력해졌습니다. 이세벨은 아합의 인장으로 편지를 써서 장로와 귀인들을 움직이고, 불량자 두 사람을 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훼방하였다는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웠으며, 의인은 성 밖으로 끌려 나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왕상 21:8-13).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사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시며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네 피도 핥으리라” 선고하셨으니(왕상 21:19), 사람의 법이 부조리할지라도 하늘의 법정은 반드시 공의를 실현하십니다.

 

2. 다수의 ‘진영 논리’를 거부한 미가야 선지자의 영적 고독

부조리한 세상에서 성도가 부딪치는 또 하나의 거대한 벽은 집단적 기만과 거짓의 ‘진영 논리’입니다. 아합과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을 치려 할 때 사백 명의 선지자가 한 입으로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외쳤으나(왕상 22:6), 오직 미가야 홀로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더라’ 하며 패전과 죽음을 가감 없이 선포하였습니다(왕상 22:17). 그 대가로 그는 시드기야에게 뺨을 맞고, 옥에 갇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는 자리로 내몰렸습니다(왕상 22:24-27).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다’ 함은(왕상 22:21-23) 무죄한 자를 억지로 미혹하심이 아니라, 이미 진리를 버리고 듣기 좋은 말만 택한 자들을 그 원하는 바대로 내버려 두시는 공의로운 심판의 결과입니다.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고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도 재앙이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던 미가 시대의 죄악이(미 3:11) 오늘도 반복되고 있으니, 성도는 홀로 남을지라도 진리 편에 서야 합니다.

 

3. 구덩이와 옥에서 연단 받은 요셉

요셉의 생애는 억울함의 극치인 동시에 구속 경륜의 극치입니다. 형들은 그를 멀리서 보고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고, 채색옷을 벗겨 물 없는 구덩이에 던졌으니(창 37:19-24), 이는 한 소년을 향한 미움을 넘어 그 꿈을 주신 하나님의 주권을 정면으로 거부한 오만이었습니다. 은 이십에 팔려 만리타향으로 끌려갔으나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므로 그는 형통한 자가 되었고(창 39:2),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을 강청할 때에도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며 하나님의 낯을 두려워하였습니다(창 39:9). 그 거룩한 단호함은 도리어 모함이 되어 그를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처넣었고, 그 발은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은 쇠사슬에 매였습니다(시 105:18).

그러나 가장 어두운 그 자리가 바로에게로 나아가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마침내 요셉은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고백하였습니다(창 45:8).

 

결론: 나봇과 미가야와 요셉이 굴하지 아니한 비결은 인간적인 의지나 신념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함께하신다는 확고한 믿음과 진리를 자기 생명처럼 여긴 데 있습니다. 우리도 일터에서 누명을 쓰고, 가정에서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며,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하여 영혼의 구덩이에 던져진 듯한 날을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를 흔드는 것은 세상의 권세자가 아니라, 아픔의 골짜기를 통하여서라도 우리를 구속사의 거룩한 도구로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우리 평강의 권속들은 성령의 강력한 불 담으로 무장하여 부조리한 세상을 이기고, 자손만대에 만사형통의 복을 영원토록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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