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31
마 14:22-33
제26-35호(8.30.)
믿음이 적은 자냐 큰 자냐
마 14:22-33
오늘 이 시간, 나는 믿음이 적은 자입니까, 아니면 큰 자입니까? 주님께서는 물에 빠져 가는 베드로를 붙드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마 14:31). 반면에, 가나안 여인에게는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마 15:28).
오늘날 많은 이가 예수 믿은 지 수십 년이 되었다 하면서도 여전히 의심의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입술로는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매사를 의심하기에 모든 것이 불가능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뒷전에 두고 눈에 보이는 물질만 바라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대하시겠습니까?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셨습니다(삼상 2:30). 오늘 선포되는 엄중한 말씀을 통해 나약하고 병든 의심의 믿음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큰 믿음으로 무장하여 소원을 이루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주님을 보면 걷고, 바람을 보면 빠진다―갈릴리 바다 위에서 드러난 적은 믿음
예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보내시고, 홀로 산에 올라 기도하셨습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數里)나 떠났을 때 바람이 거슬려 물결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니, 밤 사경에 주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셨습니다(마 14:22-25). 제자들은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 소리 질렀으나, 주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셨습니다(마 14:27).
베드로가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청하매 주님이 "오라" 하시니, 그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갔습니다(마 14:28-29). 베드로는 신이 아니고 연약한 피조물이었으나,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그 말씀을 의지할 때에는 넘실대는 파도 위에서도 당당히 걸었습니다. 그러나 눈을 돌려 바람을 보는 순간, 무서워 빠져 가기 시작했습니다(마 14:30). 그가 소리 질러 구원을 요청하매 주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으시고 함께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쳤고, 배에 있던 자들이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마 14:31-33).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물 위를 걷고, 환경을 바라보면 그 자리에서 가라앉고 마는 것입니다.
2.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주님이 친히 칭찬하신 믿음의 실체
주님께서 친히 "크도다" 하고 칭찬하신 믿음이 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을 위해 나아왔다가, ‘자녀의 떡을 개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는 참담한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고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끝까지 매달렸고, 마침내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는 응답을 받아 그 시로 딸이 나았습니다(마 15:27-28). 이방인 백부장은 주님께서 친히 가시겠다 하실 때 도리어 감당치 못하겠다며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였고, 주님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고 감탄하셨습니다(마 8:8-10). 왕의 신하도 아들이 살았다는 말씀 한마디를 믿고 내려가다가 그 시각에 나은 것을 확인했습니다(요 4:50-53). 한 문둥병자 또한 주님께 나아와 “원하시면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간구하매, 주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고 그 믿음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마 8:2-3).
큰 믿음이란 곧 어떤 수모와 지체 앞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말씀을 붙드는 의심 없는 믿음입니다.
3. 하나님은 오직 믿음 하나를 보신다―에녹의 동행과 들음에서 나는 믿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인물이나 학벌이나 재물을 보지 아니하십니다. 오직 믿음 하나를 보십니다. 중풍 병자를 데려온 네 사람의 수고 앞에서도 주님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과 고침을 선포하셨습니다(막 2:5).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히 11:6). 에녹은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는 평범한 가정생활 속에서도 그 믿음으로 세상의 모든 소란을 덮었고, 마침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습니다(창 5:22-24, 히 11:5). 주님은 도마에게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셨습니다(요 20:27).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며(히 11:1), 그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 10:17). 그러므로 말씀을 사모하여 듣고 또 들어, 마귀가 바늘 끝만큼도 틈을 타지 못하도록 빈틈없는 믿음으로 굳게 서야 합니다(엡 4:27).
결론: ‘우리의 날이 땅에서 그림자와 같아 머무름이 없다’ 하였거니와(대상 29:15), 어느덧 육신은 기력이 쇠하고 매사에 의심이 앞서기 쉬운 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그러나 죽고 사는 것은 여호와께 달렸으니, 내가 스스로 절망을 선포할 자리가 아닙니다(삼상 2:6). 주님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시며,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으니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4:1-2). 이 약속을 붙든 자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비방하고 원망하던 사망의 언어를 내 입술에서 깨끗이 청산하고, 서로를 부활과 생명의 존재로 격려하며 축복하십시오. 우리 평강의 권속들은 가나안 여인과 백부장과 같은 큰 믿음을 품고, 가정을 걸머지고 교회를 걸머지며 성령의 강력한 불 담으로 무장하십시오. 그리하여 의심의 풍랑 위에서도 주님만 바라보며 걸어가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고, 자손만대에 만사형통의 복을 영원토록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